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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오래된 미래 - 박명렬(방사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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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1-21 16:42

[제1호] 오래된 미래 - 박명렬(방사선학과 교수)

오래된 미래

 

박명렬(방사선학과 교수)

 

체르노빌의 악몽
 2011년 3월 11일, 나는 영광의 실험실에서 한창 중요한 실험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일본의 동쪽 해안에 거대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이때 발생한 지진 해일 때문에 후쿠시마 해안에 설치되어 있던 원자로들이 이상상태에 빠졌다는 뉴스였다.
 즉시 전 세계는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비하여 비축해 놓았던 붕소를 일본으로 공수하였다. 붕소는 중성자를 흡수하여 연쇄 핵분열을 중단시키는 방법을 통해 원자로를 끄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러나 원자로는 결국 제어불능 상태에 빠져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쿠시마 주변은 방사성 원소에 심각하게 오염되고 말았다. 이후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고 아직까지도 원자로 주변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 사고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고였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사고다.


 1986년 4월 26일 새벽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많은 사람들을 방사능의 공포로 몰아  넣었다, 제어봉 조작 실수가 야기한 사고였다. 유럽대륙 전체가 공포에 떨었지만 당시 소련은 이를 은폐하는데 급급했었다. 당시 기자였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약 10년간의 취재 끝에 체르노빌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비참한 이야기를 담은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을 펴냈다. 방사능에 피폭된 부모와 암에 걸린 어린 아이들의 참상을 보며 저자는 “이 책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체르노빌은 우리의 미래를 닮았다” 라고 어두운 어조로 말한다. 미래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불행조차 계산하는 아베 정권
 그런데 최근에 아주 기이하고 믿기 어려운 뉴스를 접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로 냉각수를 더 이상 저장할 공간이 없어 태평양에 방류한다는 소식이었다. 원폭의 온전한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으며 아직도 방사선에 피폭된 불행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이 오염수는 해류를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바다를 오염시키고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일본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내년에 있을 도쿄올림픽을 이용하여 후쿠시마의 오염문제를 희석시키려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술책이 과학을 오염시킨 것이리라.
 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항상 방사선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가장 강력한 방사선을 내놓는 것은 다름 아닌 태양이다. 태양이 내놓는 방사선을 태양풍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지구는 두꺼운 대기와 지구 자기장을 갖고 있어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자연에는 방사선을 내놓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 주변의 암석들이나 토양, 그리고 식물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안전한 이유는 일정한 수준의 자연 방사선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자연 방사선보다 높은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이 되었을 때이다. 방사선이 위험한 이유는 인체를 통과하면서 인체의 여러 조직에 생물학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세포를 파괴하며 때로는 세포의 이상증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요즘 후쿠시마 현지의 오염상황을 알리는 보도들을 보면,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부근의 방사능 오염 수치가 기준치의 2~3배는 보통이고 무려 20배가 넘는 곳도 여러 곳 있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올림픽 때 후쿠시마에서 재배한 식품을 선수들에게 먹게 할 생각이라니, 이런 처사가 과연 문명국가의 태도인지 납득되지 않는다.

 

후쿠시마는 우리의 미래
 인간의 욕망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자 한다. 이것이 위험을 무릅쓰고 원자력발전소를 만든 이유다. 핵연료 1 그램은 가솔린 260만 리터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사실 핵연료를 제외하면 이만한 대체 에너지원을 현실적으로 찾을 방법은 없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우리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잠재적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자력발전소에 의존해야 하는지, 아니면 환경오염을 무릅쓰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하던지, 또는 청정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
 런데 사실 청정 대체 에너지라는 것도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풍력발전이나 조력발전이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이제 진부할 정도이고, 태양광 발전도 낮은 에너지 효율과 방사성 원소보다 덜 위험하다고 말할 수 없는 중금속 오염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에너지문제는 많은 경제적, 정치적 이권이 개입되어 있는 생각보다 커다란 사안이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인간이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여러 미사여구로 잠시 미봉해서 미래로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더 위험을 키워서 말이다. 30여 년 전의 체르노빌이 후쿠시마에서 더 큰 위험으로 재현된 것처럼, 후쿠시마는 다시 미래 언젠가 더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