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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호] 진정 일본에 대한 예속경제에서 벗어나려면 - 오세근(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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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1-21 17:08

[제4호] 진정 일본에 대한 예속경제에서 벗어나려면 - 오세근(사회복지학과 교수)

진정 일본에 대한 예속경제에서 벗어나려면

오세근(사회복지학과 교수)

 

 2019년 7월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과 경제전쟁의 형태를 띤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현재 정세의 절박함과 위급함을 ‘기해왜란(己亥倭亂)’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의 극한 대립이 다시 발발한 원인 설명, 문제 해결의 방식 제안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이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극우적 입장부터 ‘남·북한 연합론’의 좌파적 시각까지 스펙트럼이 분분하다.


 일본이 한국 경제발전의 은인?
 수구 보수의 일반적 시각을 들여다보자. 일제 강점기에 민생은 나아졌고, 조선과 일본의 노동자는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로서 차별은 없었다. 나아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 차관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져왔음을 실증 통계로 확인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주장에 유리한 통계수치만을 짜깁기한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본이 조선에 투자한 자본액 이상을 거두어들일 수 없는데도 조선을 구태여 식민지로 두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민지 민중의 생활 안정과 문명화를 위해 선한 의지를 펼친 제국주의 국가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따라서 수구보수의 태도는 대규모 인간의 집합적 체험과 역사적 기억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점에서 반인륜적이다. 다른 한편, 과학기술 자립론, 남북 연합론 등 이른바 좌파적 견해는 견고하게 구조화된 세계체제의 경제 분업질서와 군사·안보 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절실하게 꿰뚫어 보지 못한 관념적 당위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루쉰(魯迅)이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비틀어 말한 ‘정신적 승리법’에 불과하다.
 아베 정권의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와 수출 우대국(화이트 리스트) 제외는 경제, 정치, 외교, 군사 등 다양한 영역의 중층 결정이라는 독해를 필요로 한다. 이 국면을 어떻게 읽어내든 지금 상황은 일본에 대한 경제 의존의 결과로 연 25조 원이 넘는 적지 않은 규모의 무역 적자를 벗어나려는 우리와 정치적, 외교적 겁박으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는 일본 간의 이해 충돌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목도하는 사태의 역사적 기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기원이 경제적 조건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생활 방식을 어디까지 주조하는지, 그로부터 벗어날 방안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1965년 체제’가 한국 사회 재앙의 뿌리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 협정 등 이른바 ‘1965년 체제’가 두 나라 갈등의 연원이다. 1965년 체제의 경제부문에 한정한 특징은 미국의 과학기술과 상품 소비시장, 일본의 첨단 공작기계와 부품·소재 생산. 한국의 부품·소재 조립 가공과 최종재 공급이라는 국제 분업구조 생성이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 부가가치가 낮은 부품 조립을 벗어나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부가가치가 높은 조립 산업화로 전략을 수정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그렇지만 조립형 산업화는 고도의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기술 수준이 낮은 제품 생산에 특화한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 심화, 대기업의 자동설비 조립 방식에 의한 고용 창출 둔화, 산업 간 연관 고리 약화로 소재와 부품 공급 국가에 대한 의존 심화, 대기업의 경제 헤게모니 장악으로 노동 배제, 상시적인 구조조정, 고용 불안정과 소득격차 심화 등을 일상화시킨다. 이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는 빠르게 진행하고 생활의 불안정은 커진다.
 따라서 우리와 일본의 심각한 갈등이나 생활 세계 내부의 곤란한 문제는 반도체 부품·소재·장비의 수출 규제와 수출 우대국 제외라는 상황만 해소되면 풀리는 단순한 방정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이 늘어도 실제 잇속은 일본이 챙기도록 설계된 일명 ‘가마우지’ 국제 분업구조에서 우리의 역할이나 기능을 능동적인 것으로 바꾸는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야
 문재인 정부는 변화의 주요 계기를 국민경제 틀 내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자립화로 파악하고 2020년 예산 513조 원 가운데 17% 정도인 24조 원을 연구와 개발에 지원하기로 한다. 일본에 예속돼 있는 ‘가마우지 경제구조’를 벗어나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은 강건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옳다. 다만, 우리의 대기업은 조립산업화 전략 속에서 국민경제의 또 다른 축인 중소기업과 노동의 성과물을 배제하거나 심지어 수탈하면서 자본 축적을 빠르고 크게 해왔다.
 그러므로 지금의 문제 상황을 초래한 책임에서 비켜서 있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기업이 국민경제에 끼친 과오에 대해 반성문을 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의 추궁을 뒤로 한 채 기술 강국 만들기라는 명목으로 대기업에 거액의 국가 재정이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정책 방향인가? 라고. 자칫하면 기업의 위험이나 손실은 사회적으로 보전해주고, 그 결실은 철저하게 사유화하도록 하는 기왕의 국가와 기업의 낯 뜨거운 입맞춤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 기준 5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은 617조 원 이상, 10대 재벌로 대상을 늘리면 759조 원, 30대 재벌까지 넣으면 무려 883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대기업은 국가가 걱정하고 보살펴야 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을 국민경제의 책임 있는 주체로 견인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창의성의 발현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참고도서
이병천·전창완 엮음. 2013.『사회경제 민주주의의 경제학: 이론과 경험』.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