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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근] ‘성북구 네 모녀’의 죽음과 복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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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2-02 09:26

[오세근] ‘성북구 네 모녀’의 죽음과 복지 국가

‘성북구 네 모녀’의 죽음과 복지 국가
오세근(사회복지학과 교수)

 

 
  잇단 생활고 비관 자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여기에는 작가와 배우 등 영상표현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기에 소외된 사람 없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바라는 사람들의 꿈을 담아냈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미학은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 일그러지고 만다. 지난 11월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70대 노모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한 달 만에 발견되었다. 경찰은 네 모녀가 수천만 원에 이르는 금융권 대출 및 카드대금 체납과 딸이 운영하던 쇼핑몰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는 물론 전기·도시가스 공과금을 못내는 등 생계압박이 커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성북구 네 모녀’는 친지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여 지방자치단체가 무연고 장례를 치렀다는 후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언론 보도에서 생명을 끊음으로써 생활고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다. 2014년 2월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 실직으로 인한 생활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정말 죄송하다’는 메모와 함께 가지고 있던 전 재산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기고 자살한 이른바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이후에도 경기도 의정부 50대 부부와 딸의 자살, 경기도 시흥 30대 부부와 두 자녀 자살, 대전 40대 부부와 두 자녀 자살, 서울 중랑구 모녀 자살 사건 등이 이어진다. 바로 얼마 전인 11월 20일에도 인천 계양구 한 임대 아파트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가족을 포함한 4명이 삶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을 막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하였다. 특히 2015년 ‘사회보장급여법’을 제정하여 복지 관련 공무원이 직권으로 생활고에 직면한 사람을 찾아 신속하게 지원하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성북구 네 모녀’ 사건은 이러한 제도 정비의 또 다른 허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복지사각 지대 해소를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이 논의된다. 가구 소득이나 자산을 바탕으로 한 복지정책을 가계부채까지 고려한 복지정책으로 전환하는 것, 긴급복지 지원 대상을 확대함과 동시에 제도 홍보를 강화하는 것, 지방자치단체에 복지예산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 등이 새롭게 제안된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 또한 생활고 관련 자살을 예방하거나 해소하는 데 큰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풀기 위한 장기적이고 다면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어야
 복지사각 지대에서 잇따르는 가족단위 자살문제를 막거나,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심리부검, 지역사회 네트워킹, 복지국가의 철학에 대한 재점검 작업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 심리부검이다. 생활고에 직면한 모든 위기계층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활난에 맞닥뜨린 사람 가운데 자살을 실행하도록 매개하는 근본 동기나 사회적 원인을 정확하게 가려내야 한다. 심리부검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이 자살 사망자의 가족이나 연인, 직장 동료, 이웃사람 등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와 사망자가 남긴 각종 자료(유서, 일기, 문자 메시지 등)를 분석하여 자살 이유를 과학적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살에 대한 경찰의 어림 추정을 넘어 자살로 이끈 사회심리적 이유를 명확히 판별하는 것이다. 한때 세계 1위 자살률을 기록하던 핀란드의 경우 1987년 1년간 1,397건의 자살 전체 사례에 대한 심리부검을 실시하였다. 1991년 이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자살예방 실행전략’을 수립하여 1996년에는 20% 넘는 자살률 감소를 가져온다.

 

둘째, 지역사회 네트워킹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는 소득·자산·학벌·아파트 평수 등에 따라 분열된 새로운 신분사회라고 할 수 있다. 불평등 사회에서는 삶의 자원이 부족한 사람은 점차 축출되어 이웃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는 투명 인간이 되어 고립된다. 지역사회 네트워킹은 고립된 지역사회 주민의 사회적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지역 주민조직이나 종교단체에 연결하고, 학부모 모임에 참여시키고, 조기축구회나 동네 문화모임에 가입시켜 이른바 ‘사회적 자본’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금은 아니지만 삶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연줄망을 지니게 된다.

 

셋째, 복지국가란 도대체 인간의 어떤 바람을 실현하려는 새로운 문명인가를 원점에서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복지국가의 설계도를 다시 읽어 우리의 복지정책이 결여한 철학의 빈곤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설계도 다시 짜야
 널리 알려져 있듯이 복지국가의 설계도는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체계적인 내용을 갖추어 제시된다. 보고서는 질병, 사고, 실업, 노령으로 인해 소득이 없는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 역시 궁핍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복지국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구성원의 단순 생존 수준을 넘어선 존엄한 생존에 대한 국가 책임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에 비추어 보면 빈곤과 결핍이 임계점에 이른 뒤에야 사후약방문식 지원을 하거나 심지어 자살에 이르도록 방임하는 우리 사회의 복지는 복지국가의 원래 설계도에서 상당히 벗어난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의 입장에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줄이거나 막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의 실마리를 말해 해보았다. ‘네 모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그런 일이 이어지는 것을 부끄러워함은 사람의 본성에 가까울 것이다. 사회구성원의 그런 선한 의지에 기대 삶의 극한 상황에 처한 이웃을 의식하고 그들의 욕구와 욕망을 함께 실현하는 ‘자유로운 시민의 공동체 사회’로 이행을 스케치하고 색칠해 나가는 것이 바로 ‘네 모녀의 죽음’에 대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참고도서
① 서종한,『심리부검』, 학고재, 2016.
② 에릭 클라이넨버그, 서종민 역,『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 웅진지식하우스, 2019.
③ 지그문트 바우만, 이수영 역, 『새로운 빈곤: 노동, 소비주의 그리고 뉴푸어』, 천지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