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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아] 어느 연예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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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2-30 14:07

[안주아] 어느 연예인의 죽음

어느 연예인의 죽음

안주아 (상담심리학과 교수)

 

 얼마 전 걸그룹 f(x) 멤버 출신 가수 겸 배우인 25살의 젊은 연예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그 연예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녀가 속한 그룹도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그녀의 노래도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도 알지 못한다. 그저 간간히 미디어를 통하여, 그녀가 유명 래퍼와 연애를 했고 노브라 차림으로 SNS에 사진을 게재하곤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에 대해 악플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그녀는 그냥 그저 그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 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그의 죽음을 몰고 온 것으로 짐작되는 네티즌의 댓글과 언론의 공모를 확인하게 되면서 커다란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다.

 

  언론과 네티즌은 한통속
  그녀에 대한 댓글은 ‘관종’과 ‘노브라’로 요약된다. 그녀에 대한 댓글 중 상당수는 관종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이었고, 노브라에 대해서는 보기 민망하고 불쾌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고 대부분은 악플이었다. 미디어에서는 그녀의 자살을 보도하면서 주범으로 이 악플을 지목했다. 악플로 인해 우울증을 앓았으며 괴롭다는 메모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옛 연인의 SNS에는 그녀의 죽음을 책임지라는 악플이 쇄도했다. 그런데 이러한 악플은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가?
  홀로 살고 있는 그녀는 걸그룹을 탈퇴한 후 이렇다 할 연예활동을 하지 않았고, SNS를 통하여 근황을 알리고 있었다. 대부분 그녀의 소식은 미디어를 통하여 보도되고 과장되며 확산되었다. ‘로리타 논란’, ‘삼류 0레기’, ‘일부러 벗네’, ‘가슴 노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터넷 기사가 뜨면, 이런 낚시성 기사를 클릭하는 네티즌들에 의해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고 실시간 검색어를 찾아본 대중들의 무차별적 공격성 댓글이 이어지며, 그녀의 SNS에까지 공격은 확대되는 것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언론은 SNS을 기웃거리며 논란이 될 법한 사진을 옮겨서 기사화하고 일부 사진을 유포하기도 했다. 난도질에 가까운 이런 행태의 결과는 매우 달콤했다. 클릭수를 높인 여러 미디어는 엄청난 광고 수익을 벌어들였다.

 

  사이버 폭력과 침묵의 나선
  물론 관종과 노브라라고 공격하는 의견에 반대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댓글에서 그녀를 옹호하거나 그녀를 향한 과도한 공격을 비판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의 사회과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주장한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Theory)’으로 설명된다. 특정 의견이 다수에게 지배적인 의견으로 인정되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소수는 고립에 대한 공포로 인해 침묵한다는 것이다. 고립에 대한 공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침묵을 선택하게 한다. 이 ‘침묵의 나선’은 여론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소위 목소리 큰 소수가 여론을 주도하면서 마치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격으로 선점된 사이버 공간에서 반대 댓글을 달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 포털은 사실 자유로운 공론장이 아니라 공격적인 의견을 내세워 다른 의견표명을 잠재우는 소위 ‘침묵시키는 공간’으로 변질돼 있는 것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포털과 인터넷 미디어가 기사를 마구잡이로 양산해 수익을 거두는 악순환 구조를 언제까지 방치할 건지를 놓고 질타가 이어졌다. 이후 박대출 의원과 박선숙 의원은 각각 인터넷 준실명제을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댓글 아이디 풀네임과 IP를 공개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표시 의무를 부과하며, 이용자 요청이 있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혐오 표현 등을 삭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발의와 동시에 실효성에 여러 의문이 제기되었다. 현행법상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인터넷 실명제가 효력이 있을까?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과 익명성이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강점일텐데 이 점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부드러운 폭력의 시대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송신자와 메시지를 전달받는 수신자 사이에서, 수신자가 송신자의 메시지를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댓글 공격을 퍼부은 많은 네티즌들은 설리가 죽을 줄 몰랐다며 놀랐고, 포털을 비롯한 미디어도 죽게끔 의도하지 않았다며 발뺌했다.
  지난 10월 방송된 유니클로의 국내 TV광고에서 13세 소녀가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라고 질문하자 98세 할머니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답한다. 이 광고가 SNS로 퍼져나가면서 유니클로가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를 모독했다는 논란과 비난에 휩싸였고, 유니클로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사과 없이 광고를 중단했다. 정말 의도가 없었는가? 어떠한 메시지를 해석할 때는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 역사 등의 맥락 안에서 해석하기 마련이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전형적으로 ‘아니면 말고’ 식의 비겁한 변명이고 때로는 잔인한 폭력이 된다.
  책 제목에 끌려서 읽기 시작한 정이현의 소설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우리 사회의 사소하지만 만연한 폭력에 대해 얘기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고품격 주거 커뮤니티의 입주자들이 불쾌해한다는 이유로 1개뿐인 직원전용 엘리베이터만 이용해야 한다. 주인공은 불쾌감은 혐오감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설은 친절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모멸감을 주는 사회를 조용히 고발한다. ‘노브라 활보’, ‘노출 아랑곳 하지 않는 당당한 행보’라는 말 속에 숨겨진 비하와 모멸을 누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광고는 광고일 뿐, 그 80년은 한일관계에서의 80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무시와 조롱은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서 상냥으로 포장한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 댓글 하나 정도야..’, ‘나만 댓글 단것도 아닌데..’라는 군중심리를 업은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깊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또 한 사람의 어린 가수가 죽음을 선택했다.


참고도서: 정이현,『상냥한 폭력의 시대』, 문학과 지성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