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칼럼 Dongshin University
칼럼독서칼럼

독서칼럼


[임수진]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조회 73

관리자 2020-01-06 09:28

[임수진]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임수진(유아교육학과 교수)

 

 2020년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면적과 평당 가격으로 귀결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어떤 집단이든) 공통의 대화주제로 기능하는 것은 ‘부동산’ 혹은 ‘개발’이다. 개발은 과거의 기억과 문화를 부수고 있으며, 경제적 가치로서의 건물만 남았다. 자본의 논리가 복잡하게 맞물리며, 생소했던 개념인 ‘젠트리피케이션’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소비의 공간을 향해 움직이고, 물리적인 건설과 정신적 파괴가 동시에 진행되어 온 탓에 소중하게 생각하고 간직해야 할 곳들에 대한 기억마저 점차 희미해졌다.

 

 공간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얼마 전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 40여구가 발견됐다는 옛 광주교도소는 5·18사적지로 지정된 것으로 그즈음 광주 민주·인권기념파크 조성 사업이 확정되었다고 발표된 곳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5·18사적지인 옛 광주교도소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사적지 보존공간을 체험전시관으로 복원하고, 국제인권교류센터를 조성하며, 인근 대학과 연계된 혁신 성장 공간, 배후 주거인 주상복합, 근린시설까지 포함하여 2025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민주인권의 가치를 간직하되 현재성을 담아 재구성하겠다는 의도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을 담는 작업에 있어 기념비나 건물을 건축하여 기념하는 것, 다시 말해 물리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것에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기용은 그의 저서 『사람, 건축, 도시』에서 기념물을 인위적 기념물, 역사적 기념물, 과거적 기념물로 분류하고 있는데, 광주 민주·인권기념파크는 과거의 특정한 순간이나 사건을 의도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는 것이므로 인위적 기념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공간이 어떻게 역사성을 획득할 것인가, 그 안에 어떻게 우리 공동체의 삶을 담을 수 있을 것인지이다. 충분한 고민과 지역공동체와의 논의 없이 행정· 정치차원에서 건물만 이식하게 되면, 우리 삶이나 기억과 분리된 예외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실제의 역사는 한 눈에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사람을 담아 도시의 기억을 다시 써낸 인상적인 작업이 있다. 독일 헤센 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이다. 역사에서의 기록과 기억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여 ‘도큐멘타’라고 명명하며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는데, ‘카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령부가 주둔하여 탱크, 군용기 등 전쟁무기를 생산했던 곳이다. 1943년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도시 건물의 90%가 파괴되고, 23만 중 5만 명만 살아남은 이곳에서 《카셀 도큐멘타》는 예술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 운동이었고, 현실의 사회 정치와 거리를 두고 보수적 의미의 재건에만 초점을 두었던 대학의 개혁을 주장한 공동체의 반성적 작업이기도 했다.
 1982년, 예술가이며 교수였던 요제프 보이스가 ‘사회적 조각’으로 명명하며 시작한 <7000 그루의 떡갈나무(7000 Oaks)> 프로젝트는 자본에만 의존하는 사회를 비판하며,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회의 모든 영역을 예술로 규정하고(‘확장된 예술개념’),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어 행동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보이스는 《카셀 도큐멘타 7》을 준비하며 전시 본관인 프리데리치아눔 앞 광장에 떡갈나무 한 그루와 현무암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될 활동임을 알리는 뜻에서 광장에 6999개의 돌기둥을 삼각형으로 쌓아 연출한 후, 다음 도큐멘타가 열리는 1987년까지 각 돌기둥을 떡갈나무 한 그루와 함께 도시 곳곳에 심겠다고 선언했다. 중요한 것은 누구든 500마르크를 기부하면 보이스가 했던 것처럼 현무암과 떡갈나무를 짝지어 카셀 시의 다른 곳에 심을 수 있음을 밝히며 참여를 제안한 것이다. 산업화로 황폐해진 도시공간을 생명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목적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공간이 조각될 때, 비로소 온기가 부여된다고 믿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1987년 《카셀 도큐멘타 8》 개막일에 7000번째 나무와 현무암을 심을 수 있었다. 최근의 사진들을 보면,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현무암과 떡갈나무는 '기억', ‘참여 정신’과 같이 보이지 않은 것들을 가시화하여 보여주며 사람들과 함께 공존한다. 그들의 삶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이 프로젝트는 우리 자신이 예술가임을 인식하고 기꺼이 참여한다면, 서로 소통하고, 도시에 새로운 기억을 덧입히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우리’가 혁명이다
 영화 감독 지아 장커는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싼샤 지역을 보여준 영화 <Still Life>에 대한 인터뷰에서 개발이 사람들의 삶과 지역의 역사성을 파괴했음을 말한다. 그는 싼샤의 산수는 중국 인민폐 10위안에 그려져 있어 중국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곳이지만, 이제 쌴샤는 중국 돈에만 남아 있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자본이, 싼샤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도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워진 곳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고, 누구도 가르치지 않는 오늘날, 공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사라져가는 삶의 기억과 역사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요제프 보이스의 선언,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라는 주장은 ‘우리가 혁명이다’라는 설명과 짝을 이룬다. 우리가 살아있는 도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면 “용기를 가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맞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참여하여 ‘공간’, 그리고 ‘사람’과 소통함으로써 우리 삶과 이 도시의 의미는 새롭게 해석되고 만들어질 수 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이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

 

 - 참고도서 1: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현실문화, 2009
 - 참고도서 2: 송혜영, 『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 사회평론,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