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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공감을 이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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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1-13 09:38

[이주희] 공감을 이루려면

공감을 이루려면

이주희 (상담심리학과 교수)


 공감 불감증시대를 사는 우리

 최근 우연히 TV에서 연예인 가족에 관한 관찰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이제 갓 50일된 아이를 둔 늦깎이 부모의 육아생활이 방송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아내와 남편의 솔직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외출을 위해 화장을 하던 아내가 남편에게  "내 속눈썹이 다 빠졌어" 라고 말하자 남편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럼 붙여" 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자 방송 패널들은 모두 다 아연실색했고 나도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성들이 출산 후 산후 후유증으로 눈썹을 비롯한 모발이 빠지는 고충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해서 그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건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아픔이나 슬픔이더라도 그것을 주변에 토로하는 것은, 그 아픔을 매개로 상대방과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살가운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제안을 상대방이 무시한다면 소통 대신에 갈등이 증폭되는 건 당연한 일.
 요즘을 흔히 '공감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감이란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모두 겪어본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어떨 때 타인과 공감을 이룰 수 있을까? 일찍이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에서 참된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눌 때"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타인과 진정한 공감이 어려운 것일까? 사실 타인의 아픔을 그대로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흄은 가능한 최대로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상대방의 아픔을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참된 공감은 진정이 담긴 나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30년 가까이 '공감'을 지향하는 상담을 공부해온 나로서는 흄의 이 말이 정말 실감이 난다. 

 
 하지만 나도 감정과 태도를 갖고 있는 존재이기에 무조건 상대방의 입장에서만 모든 걸 맞출 수는 없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네가 옳다" 라고 말해준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나와 가까운 사이일수록 "혹시 그가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안타까운 마음에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앞서기 쉽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충·조·평·판’을 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잘 들어주는 것, 그것이 공감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다행히 상담 중에는 그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상대방이 극단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그제서야 그 기저에 놓인 고통이나 감정을 읽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냥 무조건 "네 감정이 옳다" 라고 말해줄 걸 하는 아쉬움 말이다.

 

 ‘나’부터 들여다보는 게 중요

 일상에서는 더 하다.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어느새 ‘기본’을 잊어버리고 내 마음이 앞선다. 일상 속에서 가까운 사람이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면  "뭐가 힘들었니?" 라며 묻고, "네 마음이 그런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라는 전폭적 공감을 해주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나도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목말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나부터 보살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는 대상에는 타인 뿐 아니라 ‘나’도 포함된다. 아니 ‘나’가 먼저다. 왜냐하면 공감이란 다른 사람한테 집중하는 동시에 자기도 주목받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보호와 자기 경계에 민감하지 않으면 심리적 탈진(번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간혹 남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내담자들을만나게 된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속으로는 쪼글쪼글 말라 비틀어져서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면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너무 ‘너’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려면 ‘나의 돌봄’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즉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언제나 나를 놓쳐서는 안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비결이다. 너를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공감하는 일이다. 대개는 여기에 걸려 넘어져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람 구하는 일에서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중략)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공감은 훈련이다

 우리가 모두 다 경험하고 살 수는 없다. 또 경험한 부분만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제한적일 것이다. 그래서 ‘공감력’이 필요한데, 그래서 공감을 하려는 노력과 훈련이 중요하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따라서 공감이라는 것은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감정적 반응 그 자체가 공감은 아니다. 한 존재가 또 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 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와 어울림이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공감을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8 정도로, 공감이란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내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이러한 ‘공감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직간접적인 경험, 독서, 영화 감상,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단히 타인의 아픔 속에 함께 하려는 실천이다. 여기에 덧붙여 공감을 방해하는 자기의 내적 아픔, 편견, 왜곡 등을 다정한 시선으로 살피고 돌보는 일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정서적 유대-연결된 마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부지런히 공감이라는 길로 마음과 마음을 꿰고, 대화라는 바느질을 해 나가며 서로를 더 단단하게 묶어가야 한다. 이것이 새해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