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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연] 저들의 혐한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

조회 67

관리자 2019-11-25 10:57

[유재연] 저들의 혐한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

저들의 혐한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

유재연(관광일본어학과 교수)

혐한서적 코너가 별도로 있는 일본의 대형서점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야기된 한일 간 갈등과 대립은 어디로, 어떻게 결말이 날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일로에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연구 분야가 일본사회와 문화이고, 학생들에게 근년 들어 한국에 비해 취업환경 좋아진 일본 진출을 독려해온 데다가, 오랫동안 일본과 지역 시민사회 창구역할의 일부를 담당해왔던 터라 지금의 상황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일본 내에서의 혐한 분위기는 2005년 만화작가 야마노 샤린이 『만화 혐한류』를 내놓으면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만화의 후속작이 나오면서 혐한을 본격적으로 다룬 서적들이 잇달아 출판되었고, 지금은 대형 서점에 아예 혐한서적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일본을 방문할 때 종종 나는 혐한 관련 서적들을 찾아서 그 내용들을 얼추 살펴보곤 했다. 그 내용을 보면, 한국 매스컴의 기사나 정재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하여 나름 합당한 근거를 갖춘 모양새를 취한 것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차별적 감정, 비방, 편견 등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배설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런 서적 중에는 한국인 저자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일본 사회에서 1980년대 이후 뉴커머로 불리는 장기체류자들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유학이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집필활동을 한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에 대한 혐오감?’ 혐한 분위기에 편승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었다. 식민지 시기 식민모국이 채워준 완장을 차고 제 민족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이른바 ‘앞잡이’를 활용한 노하우가 한층 진화한 것일까? 

 

  혐한 서적의 유행에 이어 극우 단체의 반한 시위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전달되었을 때도 나는 감정이 출렁이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일본인들의 혐한 정서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의식을 나름대로 분석해보고 뿌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30여 년 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때만 하더라도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서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은 이렇다 할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식민지배에 대한 우월감이든 가해국민으로서의 반성이든 그래도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전후 세대에게는 그저 주변의 후진국 중 하나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의식이 없어보였다. 역사교육에서 현대사 부분을 의식적으로 회피해온 탓인지 근대 이후 한일관계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독도문제나 교과서 왜곡으로 인한 한일 간의 갈등조차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심지어 한국에 친지를 두고 있는 재일동포들조차도 조국을 일본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후진국으로 여겼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무관심과 무지가 심각했다. 그런 한국이 불과 2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난 위상의 변화가 오면서 일본인에게 당혹스러움과 질시의 감정을 부추겼을 터이고, 그 감정의 뒤틀린 형태가 혐한으로 나타났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뿌듯한 기분이 든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일본 극우와 한통속
  대중문화 차원에서 위상변화를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 《겨울연가》의 방영으로 일본에 시작된 한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 2003년이다. 공교롭게도 혐한 만화의 등장은 그로부터 2년 후다. 제1차에 이어 제2차, 제3차로 이어지는 한류 붐은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다. K-POP의 폭발적인 인기와 젊은 층들의 식품과 화장품 등 한국제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뒤바뀐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류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강제징용공의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간의 갈등은 마치 그동안 혐한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던 일본인들에게 합당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다. 대립이 본격화되기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뉴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도 온통 한국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인터넷 상의 여론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최대급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야후 홈페이지 추천 뉴스난은 대부분이 한국 관련 뉴스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일본 극우들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기사들과 한국의 우파신문(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대표적이다)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기사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9월 19일자 보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노동당 비밀당원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싣기도 했다. 이 정도면 황색저널리즘이라는 이름조차 붙이기 아깝다.

 

 사실 그 동안의 한일관계를 되돌아보면 언제 우호적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반목과 대립이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그 대부분의 원인과 책임은 일본 지배세력의 발언이나 행동에 있었다. 그렇듯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뒤틀린 감정의 근원은 결코 얕지 않다.

 

미국에는 무한 굴종적인 영속패전론
  잠깐 그 근원에 대해서 일본의 한 비판적 지성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1977년 생으로 비교적 젊은 연구자인 시라이 사토시는 전후 일본인의 사고를 지배해온 것을 ‘영속패전론’이라 정의하고 있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을 패전의 날이 아닌 종전기념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묘한 레토릭 속에 숨어 있는 의미는 전쟁 상대국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피해국으로 규정하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지워버린다는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후 일본은 일관되게 미국에게는 한없이 굴종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도 아시아 주변 국가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반역사적이고 비이성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에게는 패배를 부인하고 과거를 은폐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패전국으로서 무한 종속 상태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영속패전론의 핵심을 이룬다고 시라이는 말한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아베정권의 태도도 영속패전론의 연속형태로 파악한다. 사고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나 반성이 없이 피해사실에 대한 부인과 일관된 은폐 구조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혐오감정이 증폭되면 될수록 영속패전 체제의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드러내는 징후를 보는 것 같아 뿌듯한(?) 감정마저 든다. 마치 저주와도 같은 한국에 대한 악감정은 일본의 턱밑까지 다가선 한국의 위상변화, 아직은 이르지만 북미관계 변화 조짐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전망, 촛불이 상징하는 민주주의의 경이적인 성취 등에 대한 질시와 부러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들의 한국 혐오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지만은 않다.  

 

도움을 준 책
①시라이 사토시, 『전후 일본의 이해』-만화로 보는 《영속패전론》, 이숲, 2018
②시라이 사토시, 『영속패전론』,  이숲, 2017
 *①은 ②의 만화 판으로 ‘영속패전론’의 핵심만을 재미있게 만화로 구성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