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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아] 누구를 위한 ‘보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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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1-25 14:02

[안주아] 누구를 위한 ‘보수’인가?

누구를 위한 ‘보수’인가?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안주아


    우리 동네에는 공원 근처 호젓한 곳에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다. 이 도서관은 동네 사랑방처럼 어린 아이부터 주부, 취업준비생으로 보이는 청년들과 종이 신문을 보는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항상 여러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나는 가끔 도서관에 들러 책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는데, 며칠 전 한 책이 눈에 띄어 빌려왔다. 오래전에 읽었던 것인데 꼭 다시 읽고 싶어서 빌려온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다.

 

   반복되는 역사
   『운현궁의 봄』은 1933년부터 약 1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된 역사소설이다. 안동김씨 세도 하에서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우여곡절 끝에 조대비와의 밀약을 통하여 둘째 아들을 보위에 올린 흥선대원군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김동인 선생이 문학사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일제 말기 친일행위를 하였고, 『운현궁의 봄』이 흥선대원군을 영웅화하여 역사소설로서 아쉬움이 있다는 문학가들의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국내외 상황이 구한말과 다르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북핵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사이를 외줄타기를 하듯 힘겨운 외교를 하고 있는 모습이 구한말의 조선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지난 8월 22일에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 군사정보보호협정)를 정부가  연장을 할지 안 할지 몹시 궁금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34개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상태고, 일본과는 2016년 11월 23일 33번째로 군사정보협정을 체결했는데, 당시 촛불집회와 최순실 사건 등 매우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도둑질하듯 서둘러 체결했다. 우리나라가 앞서 맺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에서는 유효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거나 5년으로 정한 반면, 일본과는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정했다. 기한 만료 90일 전에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1년이 연장되기에, 오는 11월 22일에 종료가 되는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야당과 보수단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판사판..”, “..정신 나간..”, “..이성 잃은 결정..” 이런 헤드라인의 뉴스가 등장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종편에서는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우려의 기사들이 넘쳐났다. 지소미아는 ‘파기’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은 협정인데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에서는 ‘파기’라는 선정적인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몇몇 보수단체에서는 지소미아 종료가 위헌이라며 9월 16일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소미아는 노태우 정부 때  우리나라가  일본에  요청을  했으나  일본이 거부했고, 2012년  이명박  정부 때는  일본이  요구해서 체결하려  했으나 일본의  소녀상  테러와 독도망언으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협정을 유보, 보류하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11월 22일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통과를 시키고 23일 협정에 서명했다. 이로써 일본은 우리나라의 지소미아 33번째 국가가 되었고, 광복 이후 일본과 맺은 유일한 군사협정이 된 것이다.


   강대국에 굴종적인 우리 보수의 민낯
   왜 보수는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수출규제와 반역사적인 발언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고,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하겠다’며 많은 국민이 일본산 불매운동을 아직 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지소미아 종료가 과연 우리의 국익에 위배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2016년 지소미아 협약 전 정권들은 모두 국익에 위배되는 결정을 했다는 말이 된다. 또한 한일 간 군사기밀은 북한관련 정보일 것인데,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의 정보력이 일본만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데 어떻게 민감한 군사 정보를 주고받나”. 도올 김용옥 선생은 자신의 저서 『우리는 너무 몰랐다』에서 “보수가 민족주의를 포기하면 보수가 아니다. 민족주의야말로 보수의 생명이고 정체성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가 국익에 부합된다면 그리하면 될 것이고, 국익에 해가 된다면 다시 협정하면 될 것이다. 어찌하여 이 나라에는 자국의 이익보다 다른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듯한 발언과 뉴스가 더 많은가? 그리고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면밀히 고민하지 않는가? 왜 스스로를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민족주의적이지 않은가? 보수당 출신 미국 대통령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라고 전세계에 외치는데, 우리의 보수는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안동 김씨 세도에 억눌렸던 조대비가 자신의 손으로 후계자를 선택한 후 안동 김씨를 몰아내고 풍양 조씨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은 성씨만 다른 새로운 세도정치를 꿈꾼 것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여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 흥선대원군의 공과(功過)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민족주의자요, 애국자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0년 넘게 매출 1위를 차지했던 일본산 맥주는 이제 편의점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번 추석에 일본 여행객은 작년대비 40%나 줄어들었다. 일본의 모 자동차 회사는 매출급감에 한국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NO 재팬’ 운동은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보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한 이들은 왕도, 신하도 아닌 ‘민초’였다. 전쟁 중 왕과 대신들이 궁을 버리고 도망가더라도 민초들은 의병이 되어 나라를 지켰고, 국채를 갚기 위해 국민 스스로 금붙이를 내놨다. 위기가 닥치면 대한민국은 늘 소수의 권력자들이 아닌 ‘살아있는 갈대’와 같은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저항했다. 태극기를 앞세우며 목청을 높이던 그 많던 보수들은 지금 어디가고 없고, 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애국심은 오롯이 일반 국민의 몫인지 가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 참고도서: 김동인,『운현궁의 봄』, 푸른사상,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