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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 기계 vs. 인간, 적대냐 공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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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1-25 14:07

[정호영] 기계 vs. 인간, 적대냐 공존이냐

기계 vs. 인간, 적대냐 공존이냐

정호영(항공서비스학과 교수)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 과연 사람의 자리는 어딜까? 사람의 자리가 있기는 할까? 사람의 자리가 로봇의 자리로 대체되는 것은 아닐까?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벌인 이후로 데이터 혹은 뇌가 곧 나인가, 인간은 인공지능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로봇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등 심각하고 어려운 질문들이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이에 관한 문제제기만 겨우 산발적으로 이루어질 뿐 제대로 된 논쟁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다. 지금은 주로 기술주도의 과학자들과 산업론자들이 담론을 주도하며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진화는 가히 혁명적이어서, 기술의 성격은 물론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기술에 대한 인간의 시각, 기술과 인간의 관계, 기술의 사회적 영향 등에 대해 융합적인 사유와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경우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삶과 죽음은 그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호킹이라는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지만, 기계는 호킹의 삶의 조건이었다. 호킹은 기계 덕분에 움직였고, 기계를 통해 말을 했고 또 연구를 했다. 호킹 자신도 뇌의 정보를 컴퓨터로 옮겨 신체가 소멸된 후에도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대중문화 속에서 호킹은 ‘통 속의 뇌’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호킹이 위대한 물리학자 호킹으로 ‘활동’하는 것은 그의 뇌만으로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간호사, 비서, 엔지니어, 지도 학생, 동료 연구자, 가족 등 여러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호킹이 물리학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물리학자 호킹은 그 자신의 천재적인 뇌 속에 오롯이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인적․물적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고 그 안에서 존재했던 것이다.


 알파고(AlphaGo)나 왓슨(Watson)과 같은 로봇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은 충격과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인간을 가르치고, 돌보며, 구조하는 로봇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로봇과 사람이 상호협력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발상은 하면 안 되는가. 요즘 핫한 젊은 과학자로 주목받고 있는 전치형 교수가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로봇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은 로봇과 서로 밀고 당기면서 제자리를 찾느라 방황한다. 알파고가 점령군, 침략군의 이미지를 가졌다면, 선생님 로봇, 돌봄 로봇, 재난 로봇은 이민자, 이주노동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알파고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세 가지의 로봇들은 인간의 옆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알파고 또한 이민자, 이주노동자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 날을 대비하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일을 맡기고, 어떻게 도와주고, 어떻게 함께 살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로봇의 자리, 사람의 자리
2019년 9월 20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은 “올해 안에 완전 자율주행 기능이 완성될 것”이고 “2020년 말에는 주차장에서부터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든지 운전석에서 졸아도 되는 완전 자율주행 차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는 일찍이 자율주행차가 더 안전해지면 언젠가 인간의 운전이 금지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율주행차란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운전하는 차, 또는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차’라고 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운전하는 차와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차, 이 둘은 같은 대상을 지칭하지만, 그 함축적 의미는 크게 다르다.


50여 년 전 이름도 생소하던 ‘기술철학’을 창시했던 루이스 멈포드와 자크 엘뤼가 이 세상의 ‘모든 기술은 사회적이다’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기술은 인간의 도구일 뿐인데 무슨 생뚱맞은 얘긴가” 라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기술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술은 사회적 진공 속에서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조응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은 그 시대의 문화와 욕망과 권력이 뒤엉켜 집약된 것이기에, 기술과 인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출현을 기술이 ‘특이점’을 지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간주하여, 이제 기술이 인간을 추월하여 기술만의 독주체제로 보는 것은 섣부른 생각일 수 있다. 비록 기술친화적인 과학자이지만 전치형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출현을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알고리즘의 주행 성능이 점점 좋아지면서 새롭게 발전하게 되는 것은 운전의 비주행적 측면이다. 다시 말하면 ‘운전의 사회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운전은 운전자와 다른 운전자, 운전자와 승객,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반영한다. 이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행동, 즉 사회적인 것이다. 운전은 기능적인 행위인 동시에 직업적인 태도이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 하는 사회적 활동이고 때로는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즉, 운전은 인간이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존재로서 하는 행동이다. 이와 같은 운전의 의미는 주행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환원할 수 없고, 따라서 알고리즘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언뜻 보면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는 차와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차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만일 자율주행 자동차의 기술적 진화를 후자로 전망하게 된다면 어떤 세상일까? 그것은 인류의 종말 혹은 비인간(inhuman)의 세상이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중심의 모든 사고방식과 관행들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기계와 인간의 이분법적 대립구도 하에서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기계의 인간지배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기술중심 사고다. 그보다는 기계와 인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전망하고 그것을 적극 구현하려는 노력이 현실적으로나 당위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첨단 알고리즘을 통하여 자동차의 주행 성능을 개선하여 운전자와 보행자를 더 안전하게 하고, 나아가 인간과 기계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과학자 전치형의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기술발전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또 다른 인간중심의 바람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변화의  폭과 속도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 장대하기 때문이다. 요즘 동물도 인간처럼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마당에, 어쩌면 기계도 스스로 진화하는 유기체로서 인간과 대등한 관계설정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포스트 휴먼 시대에 우리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인간의 개념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도서 : 전치형, 『사람의 자리 : 과학의 마음에 닿다』, 이음, 2019.

 

본 칼럼에 반론이 있으신 분은 같은 분량의 반대 칼럼을 기고해주시면 적극 검토하여 게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