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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렬]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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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9-11-25 14:12

[박명렬]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리그

박명렬(방사선학과 교수)

 

 

얼마 전 고위 공직자가 “개돼지”라고 말했다고 해서 큰 소동을 빚더니만, 이번엔 국회에서 법사위원회 위원장이란 사람이 다른 위원에게 “거지○○같은 게” 라는 발언을 해서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공통점이 고시(考試) 출신이라는 점이다. 또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인물은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해 소위 ‘소년 천재’라 불렸다는데 아직 알 수 없으나 결국 파국으로 경력을 마감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이들은 청년시절에 전도유망한 인물로 기억되었을 것이며 주변의 기대를 모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옛날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엔 고시합격은 팔자를 고치고 집안을 단번에 일으킬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고, 고시합격은 출세를 보장받고 남들의 부러움을 한껏 살 수 있는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기준이 현대에서도 통용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시란 게 일종의 국가자격시험이고 해당 국가를 벗어나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 매우 이례적이고 특수한 것이어서 개인에겐 우연한 기회인 셈이다. 이러한 시험의 합격 유무를 가지고 천재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단한 사고의 비약일 것이며, 그러한 지적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숱한 경우를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대부의 뿌리
고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고려 광종 때 처음 실시되었던 과거(科擧) 제도는 능력 있는 인재가 고루 중앙관직에 올라갈 수 있는 등용문 역할을 하였다. 당연히 세습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조선은 고려 말 신흥 사대부들이 중심이 되어 세습귀족인 구세력을 몰아내고 무장이었던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함으로써 건국되었다. 사대부(士大夫)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 주나라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주나라에서는 고급관리를 대부(大夫)라 불렀고, 하급관리를 사(士)라고 불렀으니 이는 모두 중앙관리를 통틀어 부르던 말인 셈이다. 고려 말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토대로 주자학을 빌려왔다. 시기로 보면 중국에 주자학이 등장한지 백여 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기이니 당시로서는 신학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조선이 외세에 의해 그 빛을 잃어갈 때까지 지배층의 정치이념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념의 탈을 쓴 명분을 앞세우며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각종 사화를 불러 일으켰으며, 각 당파들은 명멸을 거듭했지만 최종 승자는 노론들이었다. 

 

작가 이문열은 그의 책 『신들메를 고쳐매며』에서 양반 사회에 대한 강한 향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관직에 나가지 못한 양반은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중앙관직에 대한 강한 향수였다. 그는 양반이나 사대부들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소개하고 그들의 높은 학문적 성취를 말한다. 그는 해방 후 좌우의 대립에서 희생당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들을 받아주지 못한 사회에 대한 서운함을 그의 다른 책들에서도 내비치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투영하곤 했다. 이문열은 작가들이 교과서로 삼을 만큼 문체가 아름답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탁월하다. 그러나 자신의 뿌리라고 믿는 양반 또는 사대부들에 대한 향수에 기대어 스스로 선민의식에 취해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가 이야기한 사대부들은 학문의 월계관 대신에 완장을 택한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못한 시대에 대한 서운함은 자신의 소외에 대한 한탄일 것이다.

 

뚜렷한 신분제의 뿌리는 조선시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양반계급이 그것인데, 조선은 왕조의 건립 당시 양반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2% 정도일 만큼 반상의 구분이 뚜렷한 사회였다. 계급이 사회구조를 결정하는 조선시대를 본격적인 봉건제의 시작을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은 사대부 또는 아직 관직에 나가지 못한 예비 관료들인 사림들의 나라였으며 양반들의 나라였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돈으로 족보를 사서 자신의 핏줄이 아닌 사람들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을 것이다. 양반이라는 계급을 가지게 되면 언제든지 과거를 통해 입신하고 양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완장을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급기야 조선말에는 전체 인구의 70%가 양반이었다고 전해지니 이 모든 이들이 학문에 대한 열정만으로 신분을 세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엘리트주의의 민낯
수 천 년도 더 된 중국의 싯 구절을 읊거나 왕조에 대한 충성과 효에 대한 고사(古事)를 외우는 것이 당시의 과거 준비였으니, 과거를 통해 중앙관리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이념이 충과 효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믿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었으니 그들의 지적인 능력이 최소한 평균 이상이라는 것도 믿을 만하다.

 

 그러나 주자학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학문의 주류가 바뀌고 다시 고증학이 등장할 때까지 조선은 끝까지 주자학 또는 성리학의 나라로만 남았다. 스스로 학자라고도 자임했던 사대부들이 상국(上國)이라고 받들어마지 않던 중국에서의 학문적 변화를 모른 척했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주자학 또는 성리학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이거나 게으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에 고증학을 토대로 한 실학이 이미 조선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완장을 채워주는 어떤 통과의례가 그들의 학문적인 허영심과 지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조선의 사대부들의 최악의 모습은 조선의 기운이 다해갈 무렵 여지없이 드러났다. 조선 말 명성황후가 환궁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열렸던 과거에서 한 젊은이가 문과에 급제한다. 과거에 급제했으니 성리학을 이념의 발판으로 삼았을 것이며, 충과 효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녔을 것이고, 지적인 능력 또한 일반인보다는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관직에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이조판서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이완용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몇 푼의 돈과 귀족지위에 스스럼없이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데 앞장섰다. 자신의 이념에 대한 배신치고는 참으로 고약한 만행이었다. 자신에게 부와 지위를 안겨준 그 성리학 또는 정치 이념이 그 자신에게는 한낱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이완용을 비롯한 관료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더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침내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기에 이른다. 조선의 마지막 붕당은 노론이었다. 그들은 500년에 가까운 조선의 역사에서 매우 섬세한 부분에서까지 의와 예를 명분으로 반대파를 압박하거나 때로는 왕까지 겁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산이 멸망해 갈 때, 누구하나 의와 예를 따라 조선의 마지막에 저항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조선 사회의 엘리트라고 이야기했던 사대부 또는 사림들의 민낯이다. 

 

이렇듯 설익은 자격에 도취해 선민의식에 가득 찬 맹목적인 권력 추종자들이 초래하는 비극의 끝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보다 힘 센 권력자에겐 납작 엎드리고,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에겐 한없이 추상처럼 엄한 자들로 변신하며, 결국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러한 심성과 문화가 하나의 습성으로 똬리를 틀 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민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마저도 절제하여 사용하려는 민주적 대통령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이들 관료들은 할 말은 하는 소신 있는 관료인 것처럼 그러한 대통령에게 대드는 형국을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검사와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다가도 권위적인 대통령이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철저히 권력자에 순종하면서 다른 계급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후천적으로 학습된 버릇이 나온다. 여기에 이유도 모르고 어느새 우리 옆에 스며든 ‘갑질 문화’도 그들의 굴절된 선민의식에서 파생된 것인지 의심해 볼 만하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을 개돼지라고 부를 자격은 당연히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거지○○같은 게” 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특히 그것이 국가가 자격을 부여하는 자격시험 통과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언행들이 스스로 사회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집단들이 봉건적인 시각으로 국민을 교화의 대상인 신민(臣民)이나 목민(牧民)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항상 살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말을 할 깜냥도 아니다.


이문열, 『신들메를 고쳐매며』, 문이당,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