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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증오의 시대를 건너는 개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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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1-20 09:31

[조현정] 증오의 시대를 건너는 개인의 자세

증오의 시대를 건너는 개인의 자세
조현정 (홍보협력팀장)

 

 1970년대 후반, 전라도의 한 소도시 읍내. 행여 누가 볼세라 땅만 보고 걸어가던 시커먼 소녀가 있었다. 40년 전의 나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던 무렵에 생긴 습관이었으리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엄청난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 사람 모두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는데 나만 사명도 못 받고 그냥 태어난 것 같아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누군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조마조마했었던 것도 같다. 세상은 온통 모호한 것 투성이었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정답처럼 외우고, 날씨처럼 받아들일 뿐.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조용히 곁눈질하며 남들을 따라 하기 바빴다. 각하가 서거하셨다며 통곡하는 친구들을 보고, 나 또한 애국 소녀임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서글픈 기억들을 소환하며 서럽게 울었다. 날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하면서,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장했다.

 

시대 정신과 개인의 가치관에 관한 질문들
 기가 승하던 사춘기를 거치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지만, 좋은 것일수록 ‘누리는’ 것보다 ‘누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기에 절제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터무니없는 대의를 앞세워, 너무나 자발적으로 누르고 눌렀다. 행복하면 미안했던 시절, 미안하지 않기 위해 행복을 외면해야 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역할극에 충실하며 나의 시간은 흘러갔고, 그동안 세상은 변하여 개인의 취향과 행복이 존중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킨 이 위대한 흐름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깃발 아래 사람들이 모이던 시대가 종말을 고했나 싶더니, 언젠가부터 수많은 군중이 거리로 나와 태극기 휘날리는 낮과 촛불 켜는 밤을 연출한다. 언론에도, 언론 같지 않은 언론에도, 인터넷과 유튜브에도 태극기와 촛불의 전쟁에 참전한 개인들이 넘쳐난다. 마치 21세기판 직접민주주의 시대로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이 광활한 개인 미디어의 시대에 선택지는 두 개뿐, 내 편과 네 편만이 존재한다. ‘끝장 토론’에도 극한대립은 끝장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광주지역 언론이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독창적인 관점을 갖고 있지도 않고, 광주에 내로라하는 오피니언 리더나 독보적인 시민단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정치적인 분기점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투표해 정치 지형을 바꾸어내는 광주시민들은, 그리고 매번 이쪽과 반대로 행동하는 저쪽 시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치의 양보 없는 주장들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랄까, 진영의 논리랄까, 한 집단에 속한 개인의 가치관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하는지 궁금해지던 즈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애나 번스의 장편소설 『밀크맨』이다.

 

의심하면 의심받는 하수상한 시절의 개인
 2018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이 책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의 폐쇄적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이 테러와 보복을 일삼던 시기에 마을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길 이쪽’과 ‘길 저쪽’으로 철저히 나뉘어있다. 사람들의 행동은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이분법적 잣대로 평가된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무조건 믿어야 한다. 의심하면 안 된다. 튀어서도 안 된다.
 소설은 직장에 다니는 18세 여성 ‘나’의 일인칭 시점에서 독특한 화법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은 ‘아무개 아들 아무개’, ‘어쩌면 남자친구’, ‘가장 오래된 친구’, ‘진짜 밀크맨’ 등으로 지칭된다. 모두가 익명이다. 주인공은 10남매 중 ‘가운데 아이’로, 책 읽으면서 걷는 것과 조깅을 좋아한다. 상도에서 벗어난 튀는 행동이다. 그녀에게 ‘밀크맨’이라 불리는 40대 유부남이 접근한다. ‘밀크맨’은 이쪽 사람들이 숭배하는 무장 세력의 요인.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그녀가 가는 곳 어디든 불쑥 나타난다. 그녀는 그런 그가 불쾌하지만, 몸에 손대지 않는 한 폭력이 아닌 것 같아서 소심하게 거절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두 사람이 불륜관계라는 소문이 파다하고, 아무리 부인해봐도 엄마조차 믿어주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친구마저 “네가 걸으면서 책 읽는 것이 문제”라고 질책한다. ‘밀크맨’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 대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기 때문이다. ‘밀크맨’의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와 친해지려는 사람도 생기지만, ‘밀크맨’이 죽어버리자 앞뒤가 맞지 않는 소문들이 마구잡이로 생겨나 그녀를 압박한다. 근거 없는 소문과 편견. 그 보이지 않는 폭력 속에서 그녀는 타인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숨 막히는 세상. 그러나 그녀에게는 스스로 일어나 다시 뛸 힘이 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내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가지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녀가 다니던 학원의 프랑스어 교사는 어느 날 학생들에게 해질녘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한, 하늘은 무조건 파란색이다. 그런데 웬걸. 하늘에는 주황색과 회색과 녹색과 보라색이 현란하게 펼쳐져 있다. 파란색은 보이지도 않는다. 당황한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도 외면하며 “하늘은 파란색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을 향한 교사의 잔잔한 목소리.

 

 “저녁놀을 보고 불편해하는 것도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는 것도 다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니까. 깨어난다는 의미니까. 본심을 들켰다거나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 그곳에서 나오세요. 지렛목이라고 할까, 회전축이라고 할까, 전환점이라고 할까. 뭐가 됐든 모든 것의 의미가 나타나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 한 가지가 바뀌면, 딱 한 가지가 바뀌면 다른 것도 모두 바뀔 거라고 장담해요.”

 

 누구에게나 껍데기를 벗고 걸어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극적인 변화는 극적인 계기가 있어야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노을빛 하늘을 외면하지 않고 쳐다보는 정도의 용기,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고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정도의 인내심, 그 결과 하늘에는 파란색뿐만 아니라 붉은색과 보라색과 녹색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정직함. 이 작은 움직임이 자기 안의 편견을 깨트리고, 집단의 증오를 희석시키고,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동안 40년 전의 북아일랜드 마을과, 비슷한 시기의 전라도 소읍과, 2019년 가을의 광화문 광장이 자꾸만 오버랩 됐다.
 교수신문이 2019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공명조는 불경에 나오는 전설의 새로, 몸통 하나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 한쪽 머리는 낮에, 다른 쪽 머리는 밤에 깨어나 활동하는데 한쪽 머리가 몸에 좋은 열매만 찾아 먹자 다른 쪽 머리가 시기 질투에 휩싸여 독이 든 열매를 먹는 바람에 둘 다 죽고 만다는 이야기다.
 공명조의 비극은 머리가 두 개여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양쪽 머리가 동시에 대장이 될 수는 없지만 둘 다 행복할 수는 있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공존은 가능하다. 머리가 몇 개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던가. 부디 우리 사회의 두 날개가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 참고도서 : Anna Burns(2018), Milkman, 홍한별(역,2019), 『밀크맨』, 창비